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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her)는 <존 말코비치 되기>라는 작품으로 할리우드에서도 상당히 독창적인 데뷔작을 가진 스파이크 존즈 감독이 연출한 네 번째 장편 영화이다. 여자에 대해서 웬만큼 알지 않고서야 붙이기 힘든 제목 아닌가. 게다가 그녀가 사람도 아닌 OS(컴퓨터 운영체제)라니 ㅠㅠ 

그를 그리고 이 영화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영화의 감독인 소피아 코폴라가 이혼한 전 부인이란 사실을 먼저 알아둘 필요가 있다.(둘다 지금은 재혼했다.) 이 영화에 등장한 (아름답지만 다소 신경질적인) 이혼한 아내가 소피아 코폴라를 연상시키는 것도 흥미롭다. 

이 영화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난해한 과제인 '관계', 그것도 남녀의 관계, 사랑의 본질에 대해 깊이있는 통찰을 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것이 내가 얼마나 고유한 존재인지 확인받고 싶어하는 욕구라 할 수 있다. 누구보다 나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존재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상대방의 기분에 맞춰주기보다는 내 상황에 맞춰주는 사람을 원한다. 언제나 내가 원할 때면 응답해주는 사람이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OS라면? 
인공지능을 가진, 그것도 '스칼렛 요한슨'처럼 매력적인 여성의 목소리의 그녀라면?

그런데 이게 완전히 황당한 얘기는 아니다. 요즘은 스마트폰에도 질문을 하면 위트있게 대답해주는 이런 기능이 있다. (LG의 Q보이스, 아이폰의 시리, 삼성의 S보이스 등) 스마트폰에 수 천개의 대화 알고리즘을 입력해 두고 질문에 맞는 적절한 답변을 내놓는다. 근미래에 인공지능과 음성 기술이 진화하면 이런 것이 가능해 가능해 질지도 모른다.


http://photohistory.tistory.com/12148

현대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점점 더 고독해진다. 기술의 진보는 우리 삶의 커뮤니케이션을 점점 더 폐쇄적이고 가식적으로 변하게 만들고 가고 있다. 당장 우리가 현실의 친구를 두고 페이스북과 같은 SNS의 가상 공간의 사람들과 더 교감하는 심리만 봐도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나를 이해해주는 상대를 필요로 한다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런지.

스파이크 존즈 감독 10년 전쯤 뉴스를 통해서 인공지능과 채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호기심에 바로 해 봤는데 당시에는 그냥 입력된 몇 가지 경우의 수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후 만약 정말 훨씬 발전된 '사만다' 같은 고유의 인격을 가진 인공체제와 대화를 하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5주만에 시나리오 초고를 완성했다고 한다.  

독창적인 소재와 기발한 상상력에 더불어 사랑의 본질이라는 심도 있는 주제를 자신의 특기인 감각적인 연출로 완성한 영화 <그녀>는 올해 내가 꼽는 베스트 영화에 감히 언급할 만하다. 컬러풀하고 모던한 분위기의 감각적인 영상, 아름다운 배경 음악에 배우들의 인상적인 열연까지. 

나도 처음에는 OS와 연애를 한다니...정말 황당하다고 생각했다. 이건 뭐 SF 영화도 아닌 주제에...
손글씨로 타인의 편지를 대신 멋지게 써주는 대필 작가가 직업인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 역)는 1년 전 이혼한 아내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런 그가 새로 산 OS 속에서 따뜻한 목소리의 주인공인 '사만다'를 만나게 된다. (스칼렛 요한슨이라는 탁월한 목소리 캐스팅이라니!)
그녀는 단숨에 그의 하드웨어를 훑어보고 이메일을 정리해주고 스케쥴을 알려주고, 심지어 자신의 대필편지를 출판사에 보내 책까지 내게 해준다.
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밤에 잠들 때까지 항상 나를 지켜봐주고 외로우면 밤새고 이야기 상대가 되어 준다. 



'테오도르'는 왼쪽 셔츠 주머니에 카메라를 켠 채로 사만다에게 세상을 보여주며 이어폰을 낀 채로 해변 데이트를 즐기기도 하고, '사만다'는 이런 그를 위해 서로가 깊이 교감하는 순간마다 음악을 작곡해 들려준다. (이 영화에서 가장 낭만적인 장면....)  
심지어 목소리만으로 절정에 이르게 해주고, 물리적인 접촉을 할 수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 젊은 여성을 구한 뒤 자신을 대신해 섹스를 시도하기도 한다. 이렇게 둘은 그 어떤 신체적 접촉보다 밀도 높은 정신적 교감을 나누며, 보통의 연인들처럼 사랑을 점점 키워 나간다.

그러나 매일매일 무섭게 진화하는 인공지능 '사만다'는 사람인 '테오도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속도로 퍼져나간다.

그러던 어느날, '사만다'는 점점 진화하면서 8천 명의 사람과 동시에 대화하고 있으며, 그 중에 641명과 사랑에 빠져있다고 대답한다.

그것이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스포일러라면 죄송 ^^;;;) 


이 영화는 묻는다.  

누군가랑 사랑할 때, 상대방이 내가 처음 사랑에 빠졌던 순간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닌데도 

그런 변화와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를 계속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나 역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서로가 변화하는데도 사랑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녀(her)의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UPIKorea - 에 등장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재미있다.




 <주인공의 고독함을 달래주는 욕쟁이 컴퓨터 게임..목소리 역에 감독이 열연했다니 정말 귀엽다>



명대사

  • "우리가 이 세상에 잠시 있다가 떠나는 그 시간만큼은 즐겁고 싶어." - 에이미 

  •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난 앞으로 내가 느낄 감정을 벌써 다 경험해 버린게 아닐까.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앞으로는 쭉.. 새로운 느낌은 하나도 없게 되는 건 아닐까.. 내가 정말로 느꼈던 그 감정에서 좀 축소된 어떤 감정들만 남는..." - 테오도르 

  • (테오도르)"나는 다른 누구도 당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지 않았어..."(사만다)"나도 그래요. 이제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아는 거겠죠."

  • "그렇지만 그게 힘든 부분이기도 해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성장하는 것 서로를 겁먹게 하지 않으면서 변화하고, 삶을 공유하는 것 난 여전히 내 자신이 그녀와 대화하고 있는 걸 느껴요. 내 머리 속에서지만.." - 테오도르

  • I'm yours and I'm not yours.- 사만다

  • "사랑을 하면 다 미친사람이되는데, 사랑은 공공연히 허락된 미친 짓이지."
    'Falling in love is a crazy thing to do, It's like a socially acceptable form of insanity.'

  • '누군가와 삶을 공유한다는 기분은 꽤 괜찮아..'
    'There's something that feels so good about sharing your life with somebody.'

  • '우리가 이 세상에 잠시 있다가 떠나는 그 시간만큼은 즐겁고 싶어.' 
    'We're only here briefly. And while I'm here, I wanna allow myself joy.'

  • "나는 인공지능이라 당신보다 빠른데 당신이라는 책을 당신의 속도에 맞춰 느리게 읽다보면 단어와 단어 사이에 공간이 생겨요. 그리고 거기 빠져서 길을 잃게 돼요. 그래서 당신이라는 책 속에 머물 수가 없어요.




그녀 (2014)

Her 
 8.6
감독
스파이크 존즈
출연
호아킨 피닉스스칼렛 요한슨루니 마라에이미 아담스올리비아 와일드
정보
드라마, 로맨스/멜로 | 미국 | 126 분 | 2014-05-22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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